
칼과 황홀
성석제 지음
문학동네
2011
별로 내 취향 아닌 책, 내가 직접 골라서는 읽지 않았을 책. 그런데 종종 내게 책을 주시는 (그러면서 책 후기도 은근 바라시는) 교수님 덕에 보게 되었는데, 생각외로 재밌다. 그냥 지나칠 일들, 나중에는 기억도 안날 일들을 에피소드로 둔갑시켜 글을 써내는 작가들이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하게 되었다.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센스있는 삽화도 재미에 한몫한다. 왠지 소설보다 산문이 더 재밌을 것 같은 작가. 다른 책도 찾아서 읽어봐야지.
양념장이 담긴 스테인리스 그릇 속에 참기름이 만든 크고 작은 거울이 생겨난다. -p.181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가 갑자기 혼자가 될 때가 있다. 친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각자 재미있고 정다운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버리고 혼자서 정처 없이 거리를 걸어갈 때, 만날 사람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는 그런 저녁이 있지 않은가. 그 외로움, 뼈저린 고독을 견딜 수 있어야만 진정한 예술가가 된다고 어느 선배는 말했다. 그럴 때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으로 돌아가 혼자 맛있게 밥을 먹고 제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푹 자고 일어날 수 있다면 예술이 아니라 무슨 분야에서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p. 217
내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먹은 것의 성질을 내 성질로 받아들이게 된다. 가령 육식을 하는 사람은 동물의 속성을, 채식을 하는 사람은 식물의 속성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 동물이 태어나서 사육되고 도축, 가공, 조리되는 과정에서 겪는 희로애락, 더럽고 깨끗함이 음식물의 본질을 이루게 되고 그 본질이 그걸 먹는 사람의 본질을 결정한다. 그러니 고통 속에서 힘들게 살다 죽은 짐승보다는 자연상태에서 행복하게 살던 동물을 와락 붙잡아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여서 먹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런 '자연산'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같으면 식물이라고 형편이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다. 사육이냐 재배냐 하는 구별이 있을 뿐. -p. 342

